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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일지

곁에서 떠나신 분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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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귀족호도 작성일16-05-18 20:43 조회109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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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하루 일과를 마치고 석양노을에 박물관 정원을 담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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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양의 박물관 테마공원이다.


 

1986년부터 조선일보를 구독한 당골 애독자가 김재원이다.

1995년쯤 1년 정도 조선을 사절한 바 있으나~ 이때도 신문 대신 월간조선으로 바꾸어 조선과 인연은 가졌다.

이때 1년을 거절한 사유는 김대중 선생과 조선이 첨예하게 대결한 시기였는데~ 조선이 김대중 선생을 심하게 폄하한 게 원인 이었고, 이는 호남을 차별한 보수의 횡포라고 보면 된다.

나는 5공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시절~ 이때가 1985년쯤 될것이다. 장흥군농촌지도소 농촌지도사 평직원으로 있을때다. 민중을 대변한 민주신문을 창간한다고~ 후원자를 전국적으로 모집할 때 아무도 몰레 10만원을 후원하여, 지금의 한겨레 신문이 탄생 한 주엮이었다. 그때 출자 구좌수가 20주(1주×5,000원×20주=100,000원)다. 지금도 한겨레신문 주주로 임원 선출때 한 표 던진다.

이때 안기부에서 알았으면 공무원이란 타켓으로 난~ 징계 및 숙청감이었다.

그러고 보면 김재원이는 ‘중도 진보 주의자’가 확실하다.

그런데 수구꼴통 보수신문인 조선일보를 어떻게 해서 30년 구독 하였을까 의문이 갈 것이다.

장흥에서 조선일보는 ‘조무웅 전 통신공사 직원’ 사모님이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구독 요청에 의거 애독자가 된 주 요인이다. 조무웅 지국장은 통신공사 퇴직을 하고난 후에 지금까지 본인이 총괄 운영하였다.

그당시 저의 집사람이 우체국에 근무할 당시라, 통신공사 전신이 우체국으로 조무웅 현 지국장과 집사람과의 동료 인연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30년간 조선일보의 혜택을 많이 보았다. 하루도 빠짐없이 사설 및 칼럼은 100% 숙독하였다. 이걸 빠뜨린 하루는 없었다. 페이지로 따지면 30,000여 페이지 불량이다.

사설의 장점은 짧은 단원에 서론, 본론, 결론이 뚜렷하고 세상을 우회적 논설로 명확히 끝을 맺는다. 그래서 첫줄에 결론이 먼저 나온다. 논술과 논리 면에서 나를 많이 가르친 게 30년의 조선 사설이었기 때문에 김재원은 다른 사람과 면담시 첫 마디만 들어보면 결론을 가늠할 수 있는 기술을 연마 하였다고 보면 된다.

조무웅 조선일보 지국장은 신문 휴간일을 제외하고 365일 비가오나 눈이오나 바람이 부나, 더~ 나아가 태풍이 몰아 칠때도 오토바이로 콘테이너 박스에 신문을 싵고 이른아침 박물관으로 배달하였다. 그시간이 7시 30분이다. 시계를 보고있지 않아도 오토바이 소리만 듣고 일곱시 반 되었구나를 안다.

조선일보를 욕하지만~ 그래도 조선이 날 키워줬다. 그것도 한가지만 30년 함께 하다보니 그렇다. 무슨일이든 한 우물을 파라! 그러면 얻는게 있다.

조무웅 지국장님은 날 매우 좋아 한다. 아니~ 누구든 조 지국장을 따르고 좋아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조무웅 지국장님은 김재원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내 칭찬을 밥먹 듯 하시는 분이다.

12월이면 난 신문값을 미리 준비해 놓는다. 신문에 구좌번호를 적어놔도 되는데~ 30년간 방문을 하였기 때문에 1년 구독료 18만원을 항상 준비해 놓았다. 실지 받기는 17만원 받는다. 18만원 받고 1만원 다시 내 주신다. 이때나마 얼굴보고 정담 나누고자 오신것 같다.

그제 아침도(5/16일) 오토바이 소리가 났었고 신문도 던져저 있었다. 어제는(5/17일) 신문이 없어 집사람에게 물었다. 혹시 신문 가지고 올라 왔느냐고? 안가지고 올라왔다는 것이다. 묘한 일이다. 9시가 되었는데도 신문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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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물관 석양 노을이다.​

2016년 5월 16일(월요일) 신문을 마지막으로 배달하고 조국장님은 다음~다음~집을 나서면서 교통사고로 운명하셨다. 조국장님의 아침 손길을 이제는 맡을 수 가 없게 되었다. 낼(5/19일) 장흥 공원묘지로 떠나신다. 부디 편안히 영면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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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물관 돌틈 찔레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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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입구 마살줄이다. 일명 그 향기가 천리까지 흐른다고 '천리향'

날~ 아껴주신 분이 또 있었다.

두 번째분은 장흥군청 기획감사실장(서기관 / 사실상 장흥군 서열 2위)을 엮임하신 김재종 큰방 아저씨다.

난 30대 초반 신혼때 김실장님 작은방에서 약 8년 접방 생활을 했다.

전기세를 큰방, 작은방 구별않고 서로 낼려고 아침일찍 대문밖에서 김실장님과 검침원 아저씨를 기다리는 추억이 떠~ 오른다.

이분이 기획실장으로 재임시 난~ 박물관을 하고 있었다.

어느날 군청 기획실로 날 오라는 것이다. 차나 한잔 하게~~~

읍내 가는길에 방문하였다. 기획감사실 응접셑트에서 나에게 담배를 권했다. 난 사양 했지만 불까지 붙여 주시는거라 어쩔 수 없이 한 개피 피웠는데, 김실장님도 같이 피웠다. 나는 직원들 미안해서 절반쯤 피우고 꺼버렸지만~

김실장님의 그게 무슨 뜻 이었을까?

야~ 이놈들아 김재원이는 나하고 이렇게 맛담배를 피우는 관계이니, 너희들도 그렇게 알아라 하는 무언의 격상을 그렇게 하셨던 것 같다.

이렇게 날 아껴 주시는 분 께서 몇해전 등산 도중 운명을 달리 하셨다. 살아 계시면 71세 이시니 아직도 건강할 연세이신데~

김실장님은 내가 공무원으로 있을 때 공직사회에서 성장토록 기틀을 마련해 주셨고, 사회적으로 성장시켜 주셨으며, 또한 재테크를 마련하도록 경제 공부를 깨우치게 하셨을 뿐 아니라 박물관의 SOC 사업 등 실장님의 공적에는 쇨 수 없이 많다.

장흥여중 엄인기 수학담당 선생님(지금은 퇴직)께서 언젠가 나에게 말했다. 김관장! 김실장께서 김관장 칭찬을 1시간 이상을 하시는데 참~ 이런분도 김관장 곁에 있다는 것은 행복한 것일세~ 라는 말씀을 하신적이 있다.

지금 살아 계시면 참~ 좋을 텐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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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박물관의 꽃들이다.

세 번째로 장흥고등학교 문의선 선생님이다.

문선생님은 완도 출신으로 너무 어려운 가정이라~ 완도 수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에 있는 국립 수산대학교(지금은 부경대학)를 장학생으로 입학하여, 수산증식과를 나왔기 때문에 교직에 입문하여 생물을 가르친 참 스승이다.

절실한 크리스찬이며, 장흥 효성교회 장로 이셨다. 실은 이분이 날 기독교로 인도하여 내가 세례를 받은 계기다 되었다.

문선생님! 김재원의 말이라 하면 뭐든지 들어 주셨는데~~~ 귀족호도박물관 제1회 “귀족호도의 날” 심포지움 자료집을 후원하신 분이다. 2003년에 백만원이라 하면 큰 돈 이다.

아마 본인의 몸 상태를 알으셨나 보다. 건강하게 보였는데 언젠가 분재실에서 관장님! 제 아들을 잘 부탁합니다. 라는 말씀을 하였다. 좀~ 이상하시네.... 이렇게 생각했다. 본인 아들을 본인이 잘 챙겨야제 왜? 나에게 저런 말씀을 하시제? 라는 의문을 가졌지만 그후 얼마 안되서 췌장암으로 급속히 몸이 안좋아져 운명하셨다.

그때 김재원 큰 일 한번 했다. 내가 봐도 그렇다.

내가 장례위원장을 자청해서 했다. 효성교회 목사님도 모든 장례 절차를 나에게 상의 하고 물어 봤으닌까~ 그때 장례차를 장흥고등학교 전교생 나오라 해서 운동장 한바퀴 돌고 순천 화장터를 거쳐 담양 대전면에서 운영하는 납골묘로 안장 하였다.

그 모든걸 내가 다 했다.

살아 계시면 호두나무 아래에서 담배한데 피우면서 좋은 문학 얘기 나눌텐데 아쉽다. 지금 살아계시면 올해가 회갑이다. 50세에 돌아 가셨다.

나하고 어는 산속 기도원 가서 낫는다고 복음성가에 밤새 춤추는 기억이 남는다.

그분은 절실한 크리스찬 장로이지만, 식당에서 꼭 술을 시켜 나에게 따라 주었다. 비록 내가 장로지만 관장님껜 괜찮다고 하시면서....

문의선 선생님!  꽃피는 천국에서 좋은시간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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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물관에 피어있는 왜철쭉이다.

네 번째로 장흥군 부산면 유량리에 계셨던 장평기 어르신이다.

이분은 나의 분재 사부님이셨고, 자연을 깨우쳐 주신 은인이시다.

쉽게 말하면 현 장흥군청 장공준 재무과장 큰 아버지이다.

내가 1999년 6월 30일 20년간의 공무원생활을 마치고 명예퇴직할 때 전직원 인사말에 내가 존경하는 분이 셋 계시는데~

첫 번째 나를 자연으로 입문시켜 주셨고 자연을 가르쳐 주신 부산면 장평기 선생님이고,

두 번째로 날 사회적으로 성장시켜 주신 현 장흥군청 김재종 기획감사실장님이며,

세 번째로 날 공무원상으로 가르쳐 주신 현 장흥군농촌지도소 김석봉 소장님이다. 라고 천명한 첫 번째 인사가 장평기 사부님이시다.

내가 한때 3,000평 정원수 농장을 한 적 있다. 이때 날마다 농장에 오셔서 풀메주시고, 너하고 함께 있으닌까 참~ 좋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기분을 내고 하셨는데,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신다.

장선생님은 그당시 연세가 많으셨다. 다른 사람은 그 앞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지만 나는 피웠다. 언젠가는 저희 어머님이 생존해 계실 때 장선생님 앞에서 담배 피운걸 보셨는가 보다. 내~이놈! 어른 앞에서 담배 피우면 안되느니라~ 하셨는데, 장선생님! 왈~ 내 앞서는 재원이 담배 피는 모습도 이쁘요! 그랑께 괜찮하요~ 그런 추억이 떠 오른다.

장선생님! 천당에서도 꽃과 함께~  그 좋아 하시는 나무와 함께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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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물관 귀족호도 1호 어린 열매~

518이다.

'님을 위한 행진곡' 내년부턴 제창으로 다함께~

 

 

 

댓글목록

길현종님의 댓글

길현종 작성일

오월은
가정의 달, 스승의 날이 들어 있는 달이다
관장님이 존경하는 스승을 생각해 봄도
''''''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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