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 농업의 선각자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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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귀족호도 작성일16-06-06 07:46 조회133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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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 피어있는 시계꽃 -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한국해부학회 회장님께서 예수님의 고난을
의미 한다고 했다.
배고프고 어두웠던 시절 그래도 이분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정신적으로나마 깨달을 수 가 있었다.
그래서 물질문화 보다는 ‘정신문화’가 중요하다.
김재원이가 느끼는 한국사회의 산업도 많이 변한 것 같다.
가내산업 → 경공업 → 건자재 → 자동차 → 정보통신 → 레저 → 환경산업 → 감성산업 → 인공지능(로봇, 드론) ⇒
이러한 산업으로의 변화 이전에는 반드시 배고품을 해결 해야만 가능했다. 그 배고품을 정신적으로 깨우쳐준 한국의 선각자들이 있었다.
관청(官廳)이 아닌 순수 민간의 실천 사례들이다.
소설로는 이광수의 ‘흙’과 심훈의 ‘상록수’다.
몸으로 던진 농촌계몽운동의 실천가는 충청남도 『복지농도원』 한인수 지도자와 경기도 『가나안 농군학교』 김용기 지도자다.
상기 두 ‘복지농도원’과 ‘가나안 농군학교’는 순수 개인이 설립한 농촌계몽운동의 산 교육장이다.
처음에는 흙벽돌로 집을 지어 한국의 영농후계자를 양성하였다.
본 지면에 그 정신을 피력하기에는 김재원이의 이념과 실력이 부족하다.
한마디로 복지농도원과 가나안농군학교를 입교해 보지 않고는 농촌의 깊음을 논하지 말라!
김재원이는 1984년 대전광역시 도마동에 있는 ‘복지농도원’을 입교하여 3일간 교육 받은적 있다.
사실 3일은 교육도 아니다. 최소 일주일, 더 나가 3~6개월은 받아야 제대로 된 정신수양을 했다고 생각한다.
‘가나안 농군학교’도 뜻은 있었으나 일정 관계상 입교가 그리 쉽지 않았다. 지금도 두 시설은 운영되고 있는걸로 보아지나, 시대의 변화로 초창기의 이념과는 많이 달라졌을거라고 본다. 그러나 숭고한 정신 만큼은 지금도 숨쉬고 있을 것이다.
'복지농도원'의 슬로건은 뭉치자! 미치자! 실천하자! 다.
그리고 복지농도원에서 교육을 받은 동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1주일 금식을 하면서 반만년 역사를 통해 배고프게 살아 온 조상들의 심정을 체휼하고 배고픈 사람들의 아픔을 몸소체험하는 수련을 기본으로 했다.
김재원이는 3일간 수련이라 한 끼 밥을 주지않는 걸로 대신 했었다.
이러한 한국농업의 계몽운동에 앞장선 정신적 실천이 나로하여금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한 동기부여도 있었다고 피력한다.
다음은 1923년 ‘일제 강점기’때 어느 농학도께서 일본 원예서적을 번역하여 한국의 농민에게 깨우쳐 주는 오래된 원예 백과전서 '머릿글'이다. 그 시절만 해도 한문을 많이 사용 했었나, 한글 맞춤법이 지금하고는 사뭇 다르다. ㄲ 이 당시에는 ㅅㄱ 이었나 보다.
읽어보기 바란다.
호도나무 새순
댓글목록
길현종님의 댓글
길현종 작성일
그러지요
이러한 분들이 있기에
오늘의 한국이 있지요
행복합니다